Association for Cultural Typhoon Association for Cultural Typhoon

누가 말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무엇이 가려져 왔는가

post on : 2026.02.18

지난해 컬추럴 타이푼(Cultural Typhoon)은 대만 남부의 항만도시 가오슝에서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하나의 ‘태풍’으로 출현했다. 섬이자 항구이며 회로로서의 대만을 무대로, 식민주의, 냉전, 글로벌 자본주의가 중층적으로 얽혀 온 역사와 현재를 가로지르며, 이동과 교차의 과정 속에서 문화와 권력이 어떻게 구성되어 왔는지를 묻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드러난 것은 단일한 역사나 서사가 아니라, 번역과 오독, 엇갈림 속에서도 서로 울림을 만들어내는 복수의 목소리들이었으며, 동시에 그 이면에서 침묵을 강요받아 온 관계와 경험들이었다.

 

가오슝 대회에서 던져진 질문―무엇이 번역되고, 무엇이 오독되며, 무엇이 서로 공명하는가―는 그곳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 질문들은 항구에서 항구로, 섬에서 반도로 이동하며 동아시아의 공간 속에 계속해서 남아 있다. 컬추럴 타이푼은 특정한 장소나 조직에 고정되지 않은 채, 사유와 관계를 이동시키고 교란하는 운동으로서 다음 상륙지를 요청해 왔다.

 

올해 컬추럴 타이푼은 이러한 흐름을 이어 한/조선반도로 향한다.

한/조선반도는 근대 일본의 식민지 지배, 냉전 체제에 의한 분단, 그리고 통일이라는 상상력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가 좌절되어 온 역사 속에서, 20세기 이후의 폭력과 변화가 집약된 공간이다.

 

동시에 오늘날 K-pop과 K-드라마로 대표되는 한국발 글로벌 문화는 한/조선반도의 역사적·정치적 조건 속에서 형성되었음에도, 세계 각지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이러한 문화는 종종 탈정치화된 상품으로서 ‘즐기는 대상’으로 소비되지만, 실제로는 그 소비 과정 자체가 노동, 젠더, 국가 전략, 미디어 자본, 팬덤의 실천 등 다양한 정치적 조건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일본 사회에서 한류를 소비하는 경험은 혐한 담론이나 내셔널리즘적 반동과 맞물려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며, 그 배경에는 식민지 지배의 기억과 그 미청산의 흔적이 가시적·비가시적인 형태로 남아 있다. 문화는 소비되는 순간 정치적 의미를 띠게 되며, 일본 사회가 지닌 고유한 역사적 조건과 감정 구조를 드러내게 된다. 이러한 문화적 역동성은 한/조선반도를 단순한 과거의 역사적 공간이 아니라, 기억과 망각, 통치와 저항, 열광과 관리가 교차하는 현재진행형의 장으로 부각시킨다.

 

컬추럴 스터디즈는 문화를 단순한 ‘소비’나 ‘표현’이 아니라, 권력과 역사, 표상과 주체 형성이 맞물려 작동하는 장으로 이해해 왔다. 그 과정에서 특히 소수자 여성들의 목소리는 민족, 젠더, 계급, 국가라는 복수의 권력 관계가 교차하는 지점에 놓이며, 말할 기회 자체가 박탈되거나, 발화 이후에도 왜곡되거나 대체되거나 지워지는 방식으로 반복적으로 비가시화되어 왔다.

 

한/조선반도를 주제로 삼는 것은 누가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무엇이 보이지 않게 만들어져 왔는가라는 컬추럴 스터디즈의 근본적인 질문을 동아시아의 구체적인 역사와 현재 속에서 다시 묻는 시도이다. 일본에서 한/조선반도를 이야기하는 일은 언제나 일본 사회 그 자체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재일 코리안을 둘러싼 표상과 차별의 구조, 역사에 대한 망각과 왜곡은 결코 외부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둘러싼 담론은 에드워드 사이드가 이슬람 보도를 분석하며 지적했듯이, 복잡한 역사적·정치적 맥락을 제거한 채 공포와 이질성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방식으로 형성되어 왔다. 이러한 인식은 일본의 문화와 제도, 미디어, 그리고 일상의 감각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이번 컬추럴 타이푼의 상륙지는 수도 도쿄의 쇼와여자대학이다. 이 도시는 제국의 중심으로서 형성된 통치의 흔적과, 식민지 지배 아래에서 이동과 노동을 강요당했던 사람들의 흔적이 여러 겹으로 축적된 공간이다. 이곳에서 한/조선반도를 논의하는 일은 단순히 ‘외부’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공간 내부에 축적된 역사와 침묵, 그리고 비가시화의 메커니즘을 드러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대만에서 한/조선반도로, 그리고 제국의 기억이 침전된 도시로―

컬추럴 타이푼은 동아시아를 가로지르며 경계, 중심과 주변, 과거와 현재라는 안정된 구도를 계속해서 흔들어 왔다. 본 대회가 이론과 실천, 역사와 현재, 일본과 그 외부를 가로지르며 새로운 관계와 상상력을 촉발하는 사유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